화요일, 9월 27, 2005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있었던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직후 김대중 대통령이 유럽에서 벌인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있었던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직후 김대중 대통령이 유럽에서 벌인 납치 살인 음모와 세균 테러

노무현 대통령 말하기를 : “따라서 외부 세계에 대해서는 법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비열한 수단을 동원해 공격하고, 내부에서는 철저한 충성과 보상관계를 토대로 해 주종관계를 맺고 물질적, 명예적 보상을 갈라먹는 폐쇄적 조폭문화를 끝내야 한다”. http://www.donga.com/fbin/output?f=todaynews&code=a__&n=200405270263

in English: http://www.hahnsweb.com/en/615_625.htm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있었던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직후 유럽에서 인류애를 가지고 사람들이 참여하는 북한의 결핵어린이환자를 돕고자 행하는 파리와 베를린간의 2000km 자전거대행진 행사를 이용하여 김대중 대통령은 본인을 납치 살인하려 하였다.

6.25 전쟁일이 다가오던 때 반김정일 극우라 포장하면서 부르셀에서 용이하지 않자 안트워프에서 자전거 대행진 행사의 자전거 행렬이 지나가던 때를 틈타 납치 살해하려 한 것이다.

이들은 북한결핵어린이를 돕고자 하는 행사를 이용하여 배양홍이 이북놈이라하며 친김일성 좌익으로 죄명을 만들고 마약등으로 파괴하려던 본인을 다시 죽이려 한 것이다. 마약까지 사용한 음모가 실패하자 잠시 조용하였던, 오랜 세월 기다리던 직업적 인간 사냥꾼들의 죽음의 손길이 다시 다가온 것이었다.

납치 암살대상자를 철저히 극우로 포장하기: 김정일 암살을 언급하며 본인을 그럴 극우로 포장하려 하였다. 그런 말을 하던 중 최석봉은 본인이 모르는 이철승 이라는 이름을 들고 나오며 말을 더하였었다.

자전거대행진 행사가 있을 때 본인을 반 김정일 극우로 포장하던 조직의 전염은 본인에게 마약을 사용하며 친 김일성 좌익으로 포장한 80년대 말 배양홍과 진과장 등을 포함한 정치탄압조직의 한 인물과 공조 하였다. (이들 중에는 본인을 마약에 중독시켜놓고 길에서 본인이 마약에 중독된 것을 비웃던 자도 있었다.) 이자는 후일 공공기관의 website에서 자문위원이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외교통상부가 공식적으로까지 후원한 음모였던 것이다. 외교통상부 소속의 차관급 대사 최대화는 현지에서 납치 살인 음모에 관여한 집단에서 공식적으로 최고위층에 속하는 인물이다. 부르셀에서 차관급 대사를 거치면 외교통상부 장관이 된다고 사람들은 말하곤 하였다. 제2구간은 부르셀에서 암스테르담까지였다. 부르셀과 안트워프는 행사의 제2구간에 해당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한 시민을 김정일을 암살할 반김정일 극우라 떠들며 납치 살해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의 정치적 조건이 성숙되고 적절한 답방시기가 도래하나? 자국 시민을 친김정일 좌익 대신 김정일 암살을 언급하며 그럴 반김정일 극우로 몰아 납치 살해하면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남북 대화에서 무엇을 더 얻나?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 자국 시민을 반김정일 극우로 몰아 납치 살해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김대중 대통령은 해외에서 좌익으로 몰며 탄압하던 자국 시민을 극우로 다시 포장하여 납치 살해할 권리를 지니는가?"


햇볕으로 냉전의 빙벽을 녹이고 서로 화해 협력하는 가운데 남북이 다같이 공생하고 발전하면서 통일로 나아가자"김대중 대통령은 사상범 조작과 지역 갈등 조작이 국가 통일과 평화에 무슨 역할을 한다고 하였는가?

자신의 정치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정부로 몰고 친김정일 좌익으로 몰던 자국 시민을 국가기밀을 유출하려는 자로 누명을 씨우려 대사관 내에서까지 음모하고 김정일 암살을 언급하며 반김정일 극우로 재포장하며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직후 해외에서 납치 살해하려 한 김대중 대통령의 현실감각은 본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당시 대통령의 "심부름"을 한다는 국정원장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통일부 장관을 거친 DJ의 특별한 신임을 받던 임동원 현 세종재단 이사장이다.

납치 살해 음모가 좌절되자 부르셀로 돌아온 본인에게 납치 살인하려던 자들은 문씨를 통해서 즉시 용서를 구하였다. 6.25당시 자신의 아들을 죽인 인민군을 용서한 목사도 있다며 본인에게 문씨는 용서를 구하였다. 얼마 후 문씨가 앉아 있던 그자리에 앉은 전염은 청송군사교도소를 언급하며 본인을 협박을 하였다. 청송군사교도소에 수용되었던 사람들은 살아 나와도 정상이 아니라며 자신이 군목시절 보았다며 협박의 강도를 더하였다.

이들 중 한명인 대사관정강현 참사관은 무기류라면 무엇이든 구할 수 있다는 자들, 국가의 기밀사항이라 간주될 것을 말하며 한반도에 무기류 공급을 하겠다는 자들의 접근으로 본인이 위험에 빠졌을 때도 무기류를 공급하겠다던 그를 미친놈이라 일축하며 본인을 납치 살해하려던 음모에 전념하였다. 이날 정강현 참사관은 본인을 대사관 밖으로 나가게 하기 급급하였다.

이후에도 이들은 본인을 수차에 걸쳐 납치 살해를 하려 하였다.

안트워프의 한 식당에서 칼잡이를 동원한 살해 시도가 한 예이다. 이날은 많은 자들이 살인 음모를 위장하기 위하여 동원되었다. 이날 살인하기 위하여 앞에 앉아 적당한 순간을 기다리던 자는 자신은 큰 것만 한다던 인물이었다. 전기안전차단기에 문제가 있어 전깃불이 순간 순간 나가는 식당의 한 테이블에서 본인을 죽이려 때를 기다리던 특별히 훈련 받았다는 살인 전문가와 마주보며 앉아있었다.

그리고 놀라오라던 자의 말. 전깃불이 순간 순간 나갈 때 본인의 등뒤에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 매우 체격이 큰 현지인들이 여럿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 힘이 세다는, 혼자서 여러 사람 목의 일을 한다는, 한 제삼국 인이 있었다. 거의 익지 않은 고기를 씹지 않고 특이하게 삼키던 칼잡이는 눈앞에서 오늘 식당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되뇌며 음식을 먹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본인은 그자의 앞에 앉아, 담담히 그들을 지켜보며 그들의 행동을 기다렸다. 야당을 지지하면 반정부라 하는 이상한 자들과 한때 오랜 기간 야당의 정치지도자였던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사상에 동의 하지 않으면 반정부로 정치범으로 몰아 살인까지 하려는, 음모를 업으로 삼는, 자들을 본인은 생각하였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돈만 주면 본인을 죽일 수 있는 자가 죽이려는 목적을 가지고 와 본인 눈앞에까지 와서 앉아 살인할 기회를 기다릴 수 있다는 현실을 본인은 지켜보았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식당에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며 그들은 살인시도를 포기하였다.

그 현장을 위장하기 위하여 나타난 자들 중 한 명의 얼굴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그와 함께 그곳에 들어온 나머지 사람들을 자신의 동료들이라 하였다. 전염의 심부름꾼이며 본인이 전염의 거처에서 2001년 6월 전염의 약물에 정신을 잃었다 깨어날 때도 옆에 있었던 바로 그 인물이다. 최근에도 이자는 전염의 주위에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임동원 국정원장을 통하여 안트워프에서 준비한 또 다른 살인 심부름이었다. 놀고 가라는 자리가 죽을 자리였다. 본인이 열차를 타고 부르셀로 돌아가니 한밤이었다. 음모와 위협은 다른 장소에서도 지속 되었다.

저녁시간 대법원 앞 Place Poelaert 에 다아있는 rue Ernest Allard 에서, 대광장쪽을 바라보며 서있던 본인에게 갑자기 들이 닥친 그들은 정체 불명의 성인 4인으로 구성된 일가족과 김종길의 가족이었다. 이 정체 불명의 사인 가족 중 나이 많은 남자 성인은 본인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하였다. 제 삼국으로 본인을 유인하기 위하여 나타난 함씨가 Grand Place 근처 한 식당에서 한말과 일치하는 말이다. 김종길이 멀리까지 돌아보며 상황을 살핀 후 김종길의 부인은 납치시도가 실패한 것으로 판단하고 아이들에게 공놀이를 시키었고 아이들은 마치 기계처럼 이를 수행하였다. 아이들에서 볼 수 있는 즐거움 없는 긴장된 얼굴이었다.

김종길은 대성당에서 6.25 관련 기념행사를 하고 부르셀을 떠났다. 이 자리에는 최대화 대사도 있었다. 김종길이 비행기를 타러 들어가며 마지막으로 한 말은 “청와대”였다. 본인의 질문과는 동떨어진 알 수 없는 그의 대답이었다. 또 다른 그 무엇의 시작이었다.

그가 떠나기 전 노길상 등이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말을 하며 큰 보상을 하겠다는 것을 김우철과 Popeye등을 통하여 말하였다.

전염은 김대중 대통령이 조 단위의 대북 송금하였다 말하며 본인을 해하기 위한 음모를 준비하였다. 본인은 전염의 음모를 정강현을 통하여 불가능하게 하자 그들은 정강현을 통하여 다시 경제적 보상을 하겠다 하였다. 그러나 본인은 그들의 경제적 보상을 정이 제안하는 순간 즉시 거부 하였다. 더러운 돈으로 얼마나 오래 이 사회가 파괴되었는가를 생각하고 막아야 할 자들이 하는 또 다른 종류의 파괴행위였다.

본인은 이후에도 경제적 보상 운운하는 돈의 음모를 보고 겪어야 하였다.

이들은 수차의 납치 살해 음모 시도 후 세균테러까지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세균 테러 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아들란타로 떠났다.

미국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이 제한되어있었고 서울로 갈수도 없기에 부르셀에서 잠시 머무르기 위하여 본인을 죽이려 기다리는 자들이 있는 부르셀로 다시 향하였다. 2001년 5월 말 이였다.

부르셀에 도착한 후 전염과 통화를 하고 그를 만났다. 그들의 말처럼 본인에게는 별 선택의 여지가 없는 때가 많았다. 이날도 그러한 날이었다.2001년 6월 초 부르셀에 있는 동안 본인은 전염이나 노길상등 의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들 대부분을 만나지 않았다.본인이 본인을 죽이려는 자들의 코 앞에서 단식투쟁을 시작하고 나서 수일 후 전염은 한 사람을 통하여 경제적 보상을 제안하였다.

그 보상을 말하던 자리는 전염이 본인을 2000년 6월말 경 안트워프에서 납치 살해 음모가 실패한 후 부르셀로 돌아온 본인에게 청송군사교도소를 언급하며 위협을 그 자리였다. 본인은 그 자리에서 그들의 경제적 보상 제안을 거절하였다.단식투쟁을 접고 2001년 6월 12일 14:40에 부르셀을 떠나기 위한 비행기표를 Travel Shop Brussels에서 503.27 Euro에 구입하였다. 전염은 떠나려 준비하던 본인을 자신의 부인까지 동원하여 없애려는 음모를 행하였던 것이다. 약물로 본인의 의식이 희미하여 질 때 미소를 띤 전염은 손가락을 좌우로 움직이며 본인의 의식 정도를 시험하였다. 전염은 본인이 정신을 잃기 전 그곳에 여러 명이 올 것이라 하였고 후에 본인이 그들이 누구냐 질문하였지만 그는 기억이 안 난다고 대답하였다. 이날 저녁 약물에 정신을 잃은 본인은 그곳에 잠자리를 청하러 온 사람들의 존재로 우연히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전염이 방문객들의 등장에 계획을 포기한 것이었다.

2000년에 안트워프의 한 식당에서 본인을 살해하려던 때 그들의 음모를 은폐하기 위하여 동원되었던 자들 중에 본인과 안면이 있던, 전염과 김우철과 자주 함께하던, 그자가 다시 나타났다. 본인이 약물에서 깨어날 때의 일이다.

2001년 6월 초 본인이 또 다른 그들의 경제적 보상을 거부하고 단식투쟁을 풀고 부르셀을 떠나려 할 때 또다시 전염이 본인을 제거하려 하였던 것이다. - 이로부터 수일 후 김대중 대통령은 6 •15 남북공동선언 1주년을 맞아 청와대에서 각계와의 대화 시간을 갖고 있었다.

간디는 만일 어떠한 투쟁을 계획했다가도 폭력을 쓰면 그 투쟁을 중지해버릴 정도로 철저한 비폭력주의자였습니다. 폭력은 결코 목적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는 확고한 진리에 입각했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평화민주당총재)

월요일, 9월 19, 2005

 

산적 - 한

80년대 말 90년대 초 본인에 다가온 많은 한씨 성을 가진 자 중 한명이다. 납치 암살 음모와 반국가 범죄조작이 활발하던 2000년도 중반까지 이자의 간접적 활동은 계속되었다. (최대화 시절 등장한 Artemia Han처럼.)

이자가 본인에게 마약을 사용하기 전,
자칭 별들도 떤다는 기무사 장교 배양홍이 본인을 이북놈이라 하며 친 김일성 좌익으로 포장하던,
진과장이 위험한 저녁 초대를 하던,
그런 시절

이자는 도시락 크기의 용기에 산적을 가지고 왔다.
죽은 물고기를 보내는 조폭들처럼,
대사관에 정보부직원이 본인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이름도 모르는 자가 얼굴도 제대로 본적이 없는 자가,보내온 산적,
이 정보부 직원은 후일 본인이 마약에 중독되었을 때,
후일 다른 정보부요원은 웃으며 고의적으로 본인에게 대사관에 부임하였던 식당에서 송평준을 이용하여 음모하던 정보부 직원이 미국에 이민 간다고 하였다.

이 한가에게 답을 정보부 직원에 전달하여 달라하자 한씨의 얼굴은 본인에게 "이 새끼"하며 위협하던 대사관 관리인보다 훨씬 심각한 태도를 보였던 것이었다.

본인이 마약에서 홀로 헤어나와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시작하려 할 때 본인과 친히 지내던 사람의 집에 나타나 그 동안 자신이 부산사람이라며 자신이 사용하던 경상남도 사투리라 하던 말을 듣기 싫은 말이라 떠들고 자신은 충청도라 떠든다. 본인이 친히 재내던 사람의 부인은 호남출신이었다. 그 당시 본인이 환란의 가능성을 말할 때였다. (본인이 서울에 방학 때 나오는 것을 기회 삼아 이자는 한때 본인에게 부산에 있는 자신의 출신대학에서 자신의 학업관련 서류를 가져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그 이후 이런 자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도대체 이자는 누구인가?

ps: 이자가 전화를 걸어 애타게? 찾던 자의 정체는?

금요일, 9월 02, 2005

 

국가 테러 - 국제 테러

안트워프와 부르셀에서 발생한 수차의 납치 암살 시도와 세균 테러는 관제 테러이며 국가 테러이다. 또한 국가 테러임에도 다양한 국적의 참여 인원과 전적으로 해외를 범행 장소로 삼은 이유로 인하여 예외적으로 국제성을 가진다. 따라서 국제 테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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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제 국제 테러는 김대중 대통령하에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에 보낸 e-mail에 김대중 대통령은 세균 테러까지 자행하였다.

전통적인 국가 테러는 물론 국가가 지원하거나 후원하는 테러 또는 국가가 직접 국가 기관이나 조직을 이용하여 테러를 자행하는 새로운 국가테러도 당연히 포함되고 포함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국가가 직접 테러를 수행하거나 국제테러에 직접 또는 간접 관여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여타의 보통 범죄와 다를바없다고 인식될지 모르나, 테러는 이와 같은 범죄를 수단으로 하여 사회내에 공황* 혼란 공포를 조성, 확산 시키려는 데 있다는 점에서 보통범죄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p57

테러는 통상적인 범죄와 다르다. 국제테러는 그 범죄동기와 목적 자체가 정치성을 띤 것으로서 통상적인 범죄와는 달리 정치적 동기나 목적을 위한 범죄이다. p64

1992년 당시 어느 국가 안전 기획부 (안기부, 현: 국가 정보원) 에 근무하는 사람의 저서에서. 출판 국제테러... 원문에서는 본인이 모르는 한문말을 써 panic에 해당하는 공황을 대신 사용함. 정형근 1992년, 출판사 고려원, ISBN 89-12-12317-3 03370

국가 테러 (state terrorism)는 본래 한 국가의 정부가 정권의 유지를 위하여 반 정부세력이나 개인에게 가하는 강압적 테러를 말하며 관제테러*라고도 말한다.

이 국가 테러는 국가가 자국민을 탄압하기 위해서 자국민에게 정책적으로 수행하는 테러로서 “국내성 (domestic charactere)”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그러므로 전형적 유형의 국가테러는 국내테러이다. p74

전술한 전통적 유형의 국가테러도 예외적으로 국제성을 가질 수 있는 경우가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물론 국제테러가 된다. p75

그러나 이상의 어느 경우에도 테러범의 목적은 대체로 정치적인 것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즉 테러는 본질적으로 정치적 반대의사를 표시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하나의 폭력수단이요 방법이기 때문이다.
...
테러 행위는 살인, 방화, 납치 또는 이와 유사한 폭력행위로 나타나나 여기에는 항상 정치적 목적이 개재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정치사회적인 뒷 받침이 있다. 따라서 오로지 개인의 이해관개를 그 동기로 하는 통상적인 범죄와는 전혀 다르다.

테러를 유발시키는 원인은 특정집단의 이해관개에서부터 개인의 소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테러의 목적도 반식민지전쟁이나 정치사회적 혁명의 시도 등과 같이 테러집단에 따라 다양하다. p90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인류역사상 근대적 의미의 테러는 독재정권의 집권자에 의하여 자행된 이른바 “관제테러”에서 비롯되었다. 소위 “관제테러”는 1930년대 소련의 스탈린시대에 비밀경찰에 의해 자행된 고문, 학살, 숙청행위나 히틀러시대의 나치당의 테러행위에서 극명하게 볼수 있으며, 북한 국내억압 테러행위도 여기에 속한다.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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